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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몽전쟁 당시 이상하게 몽골군이 힘을 못쓴 동네

by 프레임 2021.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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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몽골의 40년간의 침입에 전 지역이 초토화 되었습니다

하지만 몽골군이 이상할 정도로 힘을 못쓴 지역도 있었죠

어디일까요?

 

몽고군의 5개월간에 걸친 포위공격에도 버텨낸 귀주성?

몽골군 사령관 살례탑이 전사한 처인성?

 

 

정답은 바로 "충주"입니다

 

 

 

 

충주의 지정학적 위치

 

그냥 아 그렇구나..하고 넘기기엔 정말 이상한점이 있죠

바로 충주는 북부지방에서 경상도와 전라도, 강원도로 통하는 통로라서

충주 이남으로 가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성이거든요?

 

당연히 몽골군이 보기에도 매우 중요한 지역이고

거의 매 침입때마다 1번 이상의 공격을 받은 성입니다

그런데 그 중요성에 비해 몽골군이 영 성과를 못거둔 곳이 충주죠

 

 

 

 

그렇다고 안시성, 오녀산성처럼 난공불락의 요새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성과 산성뿐인데도 불구하고

점령당한건 단 한번

그것도 몽골군 스스로가 점령하자마자 물러났고

 

저항한 이들은 가차없이 추격해서 학살하는 몽골군이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잠시 피난간 것만으로도 살아남은 이상한 곳이기도 하죠

 

주요 격전만 쓸려고 해도 꽤 나옵니다..

 

1차침입에서는 관리와 양반들이 모두 도망가고 난 빈성을

일반 백성들과 천민들이 혈전을 벌인 끝에 몽고군의 남하를 막아냈고

 

 

 

 

5차 침입에서는 처인성의 영웅 김윤후가 천민들을 지휘해서 막아냅니다

그런데 운이 따랐던게 몽골군이 충주성을 2달 넘게 포위 공격하던중

몽골군 사령관 "야굴"이 갑자기 병을 얻어 귀국하면서

충주성 공격이 거의 중단되다시피 한 것이었죠

 

 

6차 침입때의 몽골군은 정말 집요하게 충주성을 공격했습니다.

 

몽골군 사령관 "차라대"가 직접 충주성을 공격했지만

공격하려는 찰나 갑자기 돌풍이 몰아치고 거센 장대비가 몽골군을 덥쳤습니다

갑작스런 기상이변에 몽골군은 큰 혼란에 빠져 버렸고

그 틈을 타서 충주성의 고려군이 습격을 가하자 몽골군은 패해서 물러납니다

 

 

 

몽골의 6차 침입때 소실된 경주 황룡사와 9층목탑 복원도

 

결국 충주에서 길이 막힌 몽골군은 어쩔수 없이 험준한 소백산맥을 넘어 경상도로 향했고

지금까지 몽골군에게서 안전했던 남부지방이 털리면서 황룡사 목탑등이 유실됩니다

 

경상도를 털고 올라오던 중 차라대는 다시 충주를 공격하려 했지만

충주성인근의 다인철소의 천민들이 몽골군과 치열하게 싸운끝에 물리칩니다

(이 공으로 다인철소는 "익안현"으로 승격되는데 지금의 "충주시 대소원면" 입니다)

 

몽골군은 충주에서 다시 패하자 전라도로 다시 내려가 전라도를 초토화 시킨후

다시 북상해서 충주를 공격합니다

이제는 정말 자존심 상해서라도 충주를 반드시 함락시켜야 하는 상황이었죠

 

이번에는 몽골군도 진짜 죽기살기로 총공격을 퍼부었고

몇번에 걸친 공격에 지친 충주성은 결국 함락됩니다.

충주성이 함락될 것 같자 노약자와 부녀자들은 모두 인근 대림산성으로 피난을 가죠

 

충주성을 함락시킨 몽골군은 피난가는 충주의 백성들을 추격합니다.,

지금까지 자신들에게 준 망신을 죽음으로 갚아주겠다는 목적이었습니다

 

도저히 몽골군의 추격을 뿌리칠수 없게 되자

백성들은 모두 월악산의 신사로 올라가 기도를 드립니다

죽음을 피할수 없는 상황에서의 마지막 남은 선택지였죠

 

"제발 달로화적(몽골)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주세요 산신님..."

 

 

과거 월악신사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덕주사 산신각

 

참고로 월악산 신사(월악신사)는 신라시대때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국사당"으로

조선 세종때에 혁폐되어 지금은 없습니다...

 

어쨋거나 몽골군은 백성들이 월악신사로 가서 기도만 하고 있다는 소식에

충주 백성들을 모두 죽여버리고

충주성에서의 굴욕을 갚겠다는 생각에 기뻐하며 신사로 올라갔습니다만...

 

신사에 거의 도착할 무렵

갑작스럽게 안개가 끼고 돌풍이 몰아쳤으며

하늘이 어두워지고 천둥, 번개가 치고 거센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신을 모시는 신사를 침범하려 하자 벌어진 너무 갑작스런 기상이변에

 

"신이 노하셨나보다!!. 이곳에서 벗어나자!!"

 

몽골군은 그렇게 모두 도망가 버렸습니다..

어렵게 점령한 충주성까지 버리고 말이죠

 

그리고 이후 더 이상 충주성에 대한 몽골군의 특기할만한 공격은 없었습니다..

 

언제나 절대절명의 순간에 충주에는 김윤후같은 걸출한 인물이 있던지

적장이 갑작스럽게 병을 얻는다던지

위험한 순간에 두번이나 갑작스런 기상이변이 생긴다던지

정말 몽골군이 보기에는 기이한 곳으로 보이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이 사건 이후 월악산은 "영봉(靈峯)"이라 불리우게 되는데

이는 "신령스러운 산" 이라는 뜻이고

영봉으로 불리운 산은 백두산과 월악산 뿐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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