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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이 쓴 표현인 '반지성주의'란?

by 프레임 2022.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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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취임사에서 윤석열은 직접 '반지성주의 'Anti-intellectualism' 란 표현을 사용했다.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미국 역사가 리처드 호프스태터다.

호프스태터는 『미국 생활에서의 반지성주의』란 책에서 미국의 지적 전통을 더듬어간다.


1. 반지성주의의 원류 미국


미국은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첨단 과학기술 국가이며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다른 한편 기독교가 특이할 정도로 번창하고, 과학자란 사람이 진화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논의를 하기도 한다.

미국 대통령이 취임할 때 성경책에 손을 올리고 선서하는 건 익히 알려져 있다.


알다시피 미국의 선조는 메이 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청교도들이다.

미국의 시작은 신앙이었고, 이들에게 대륙에 정착하여 번영하는 것은 일종의 신과의 약속이었다.

"우리가 성서를 따라 순종하며 사랑하고 복되게 살 테니 신은 마땅히 우리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시리라"

뭐 이런 상무적인 계약 개념이 당시 청교도들의 기저에 있던 사고였고, 크게 보면 그 당시 자본주의자들의 도덕관의 바탕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청교도 관습에 바탕을 둔 초기 미국 가정의 모습은 매우 지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가정의 모든 구성원은 일요일마다 예배에 참가하는 것은 물론, 집에서도 성서를 읽는 게 당연한 풍경이었다.

더 많은 목회자를 양성해야한다는 당대 미국 지성들의 주장으로 생겨난 게 하버드, 프린스턴, 예일 등의 신학교였다.


18세기 초중반, 미국에서는 신앙부흥운동이 일어난다.

신앙부흥운동의 골자는, "목사를 통해서만 구원받는다는 생각은 바리새인과 율법학자의 독선과 다름없다"였다.

그때까지 정식 예배를 열 수 있는 건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목사뿐이었는데, 늘어나는 인구수에 비해 목사의 수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에 화이트필드를 위시한 운동가들이 나타나 교단의 권위가 뻗치지 않는 야외에서 설교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국 반지성주의의 태동이었다.


반지성주의의 원류는 지성에 대한 대립이 아니다. 오히려 지성의 헤게모니에 대한 영성의 이의 제기였다.

그 근거는 '신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근본적인 종교 원리다.

아무리 높은 학문을 손에 넣었다고 해도, 아무리 높은 지상의 권위를 몸에 지니고 있다고 해도,

신 앞에서는 하등 다를 바 없는 죄인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이것이 지상의 학문이나 제도의 권위를 날려버리는 반지성주의의 메카니즘이었다.


2. 반지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현대의 반지성주의는 다분히 운문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원자력을 반대하는 의견이 있다고 치자. 지성적으로 접근하려면 원자로 폐쇄에 따르는 기회 비용의 손실을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할 것이다.

하지만 반지성주의의 입장에선 '원자력은 환경을 파괴하고 인류의 미래를 위협합니다' 하면 끝이다.

이에 토를 달면 그 사람은 인류애 없고 개발만 외치는 '나쁜 사람'이 된다.

이렇듯 감정에 호소하는 반지성주의의 운문은 그 자체로 모종의 윤리성을 띠기 때문에 더욱 상대하기 까다롭다.


위에서 말했듯 반지성주의의 원류는 지성의 헤게모니에 대한 이의 제기였다.

하지만 목적은 어디까지나 동일하게 '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다시 말해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보다 큰 목적을 잃은 반지성주의는 그저 반대를 위한 반대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성의 목소리가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봤자 '여론을 분열시키려는 (악한)기득권의 공작'으로 치부해버리면 그만이다.

거기엔 비판적 수용도 없고, 대화의 여지도 없다.

누군가의 '착한' 운문에 동조하고 동어반복하는 것만으로, 착하고 우월한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언더도그마와 반지성주의는 친숙할 수밖에 없다.


정치가들이 쉽게 민심을 얻고자 한다면, 운문으로 호소하는 게 제일 빠르다.

하지만 양식 있는 시민이라면 그들이 말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반지성주의의 윤리적인 운문은 듣기에는 좋지만 결국 아무런 책임도 부과되지 않는다.



3줄요약

1. 미국에서 시작한 반지성주의의 시작은 어디까지나 진리 탐구에 위아래가 없음을 피력하려 함이었다
2. 그러나 오늘날의 반지성주의는 스스로 선하다 여기며 위로 끌어올리는 언더도그마로 전락하고 말았다
3. 우리 자신과 위정자들에게 필요한 건 스스로 선하다 도취 상태에 빠지는 게 아니라 실천으로 책임을 다하는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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