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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업>
대한민국 정부
미합중국 해군
오만 왕립 해군
파키스탄 해군
대한민국 해군
해군 특수전전단 UDT/SEAL
소말리아 해역 호송전대 '청해부대'
2011년 1월 15일
스리랑카로 향하던 한국 국적의 화물선
<삼호 주얼리 호> 가
소말리아 해안에서 2.000 km 떨어진 인도양
해역에서 해적들에게 납치 당했습니다.
해적들의 선박 침입 당시 근무 중이던 항해사
통신채널을 통해 조난신호를 보낸 후
곧바로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은 선미에 있는
로프 저장고로 대피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로프 저장고는 대피소로써
적절한 장소는 되지 못했는지
도구를 이용한 해적들에 의해 3시간 만에
뚫리게 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총 21명의 선원들은 모두 해적들의
인질로 붙잡히고 말았죠
하지만 다행히도 삼호 주얼리 호의 조난신호를
인근 해역에 있던 청해부대에서 확인했고
소말리아 근해에서 한국 선박의 납치 사실을
대한민국 정부와 대통령에게 알립니다.
보고를 받은 대한민국의 대통령 <이명박> 은
상당한 고민에 빠지게 되는데요
이미 삼호 주얼리 호 이전에 7번이나 선박이
해적에게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졌으며
<연평도 포격 도발> , <천안함 폭침 사건> 등이
발생하기도 했던 시기였던지라
국민들은 정부와 군에 대한 대처와 대응에
불만과 불신을 가지고 있었으며
대통령 본인 조차도 더 이상 호구처럼 당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은 청해부대 지휘관에게
해적을 소탕하고 인질을 구출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이리하여 청해부대 6진은 즉시 삼호 주얼리 호를
추격하며 인질구출 작전을 준비 했으며
이때부터 청해부는 매일 구출작전을 위한
모의훈련을 시작하게 됩니다.
부산에 정박해 있는 삼호 주얼리 호와 동일한
선박의 내부 구조를 화상으로 전달받아
훈련에 활용했다고 하며
또한 국내에서는 구출작전 때 알아야 할 선박
내부 지리와 특징들을 면밀히 분석하여
청해부대에게 전달했습니다.
1월 18일
한편, 선원들을 인질로 붙잡은 해적은 선장에게
배를 소말리아로 돌릴 것을 요구합니다.
해적들이 총부리를 겨누며 지시하자 선장은
어쩔 수 없이 배를 소말리아로 돌렸으나
해군이 도착하기 전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서
갖은 방법을 동원해 속도를 늦추는데요
기관실에 이상이 생겼다는 속임수로 배를 멈춘 후
기관에 이상이 생겨 선박의 속도를 5노트
이상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자 기관장에게 몰래
엔진오일에 물을 타라고 지시했고
수 차례 시도 끝에 엔진오일에 물이 섞여
엔진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습니다.
그 탓에 삼호 주얼리 호는 배가 멈추거나
속도를 제대로 못내게 된 상태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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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선원들의 위험을 무릅쓴 행동들 덕분에
청해부대는 마침내 삼호 주얼리 호를
따라잡을 수 있었고
청해부대는 삼호 주얼리 호를 포위하고
작전을 펼칠 준비를 하는데요
저격수가 탑승한 링스헬기가 이륙했으며
공중에서 엄호를 하고 있었고
중무장한 UDT/SEAL 대원들이 탑승한 고속 단정
두 척이 삼호 주얼리 호를 겹겹이 포위해
꼼짝도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당황한 해적들은 서둘러 다른 선박을
납치해 도주를 시도하려 했으나
청해부대의 사격으로 애꿎은 해적선만 잃고
다시 후퇴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해적들은 백기를 들어
투항의사를 밝히기 시작하는데요
이를 확인한 고속단정 두 척이 삼호 주얼리 호로
서서히 접근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서로가 육안으로 확인 가능할 정도로 근접했고
UDT 대원들은 선박 승선을 시작하려 했죠
그 순간
갑자기 해적들이 링스 헬기와 UDT 대원들을
향해 총기 난사를 하기 시작합니다.
순식간에 UDT 검문검색대장을 포함한
대원 세명이 총상을 입었고
이로 인하여 작전은 중단되고 황급히 현장에서
후퇴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나마 후퇴 도중 해적선과 AK소총 3정 및
실탄 90발을 노획하는데 성공하여
해적들의 화력을 급감시키는 소소한
성과를 이루기는 했습니다.
해적들의 공격에 의해 부상을 입은 대원들은
즉시 오만으로 후송 되었는데요
고속단정 맨 선두에 있다가 허리에 총탄 3발을
맞은 검문검색대장 안 소령은 총탄 한발이
척추에 근접한 상태라 위험했고
강모 하사는 총알이 오른쪽 광대뼈를 스치고
지나가 찰과상을 입었습니다.
링스헬기에 타고 있던 해상저격팀장 김모 상사는
2발에 총탄을 맞은 상태였다고 합니다.
결국 이렇게 1차 인질구출 작전은 실패로
허무하게 일단락 되고 말았습니다.
동료 대원 세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리타이어 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UDT/SEAL 대원들은 침울해 하기 보다는
오히려 조용히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평화적으로 해결하고자 했었던 대원들의
생각은 사라진지 오래였습니다.
UDT 대원들에게는 반드시 작전을 성공시키지
않으면 안돼는 이유가 생겼으며
투지를 불태우기 시작했고 묵묵히 장비를
점검하기 시작했습니다.
1월 20일
미 해군 초계기를 통해 소말리아에서 다수의
해적 본대가 접근 중임을 통보 받은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인 <김관진> 은
이 사실을 대통령에게 전달했고
삼호 주얼리 호와 해적 본대가 합류하기 전에
서둘러 2차 작전을 진행할 것을 건의했죠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은 어디 끝장을 보자는
마음으로 작전에 대한 승인을 합니다.
이렇게 승인된 2차 작전의 작전명이 바로,
Operation Dawn of Gulf of Aden
아덴만 여명 작전
2차 작전에 대한 승인을 보고 받은 UDT/SEAL
대원들은 곧바로 출동 준비를 마칩니다.
2011년 1월 21일
AM 04:58
2차 작전에 앞서 청해부대는 링스헬기를 투입해
수 차례 교란작전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그 목적은 바로 해적들이 장기간 긴장상태에
있게 만들어 극도의 피로상태에 빠지게
만들려는 의도였습니다.
이렇게 링스헬기가 시선을 끄는 동안에
UDT 대원들이 탑승한 고속단정들이
은밀히 삼호 주얼리 호를 향해 은밀히
접근하기 시작합니다.
AM 05:17
청해부대의 모함인 충무공 이순신급 구축함
<최영함>에서 삼호 주얼리 호를 통해
ECM 소나타를 조사하여 레이더와 무전기를
완전히 먹통으로 만들어버렸고
링스헬기에서 K-6 중기관총 사격을 통해
아예 레이더와 통신 안테나를
파괴해 버렸습니다.
게다가 최영함에서 대기 중이던 UDT 저격수들이
해적들에게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는데
최영함에서 대기 중이던 UDT 저격수 김모 중사에
의해 해적 한명이 무력화 되었습니다.
한창 농성 중이던 해적들은 혼비백산하며
흩어지기 시작했다고 하며
그 틈을 타 고속단정 3척이 함미 우현에 접현하여
사다리를 이용해 선박에 진입하기 시작했고
총 두개 팀 15명의 대원들이 선박에 무사히
승선 하는데 성공 합니다.
AM 06:30
UDT 대원들은 4층 선교로 통하는 계단으로
이동하던 도중 해적 한명을 사살했고
재빨리 인질들이 있는 선교 앞까지 도달하여
섬광탄을 투척한 후 선교에 진입했죠
해적들은 짧은 교전 끝에 사살되거나 도망쳤고
대원들은 인질들을 확보했습니다.
이때 당시 삼호 주얼리 호의 선장은 해적에게
총을 맞아 중상을 입은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선장과 부상을 입은 인질들은 곧바로
미 해군이 지원해준 SH-60을 통해
오만으로 후송되었고
이제 UDT 대원들은 숨어있는 해적들을
완전히 소탕하기 시작합니다.
두 개의 팀이 흩어져서 정밀수색을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해적 6명을 사살했습니다.
또한 선장실 근처에서 해적 두목까지
사살하는데 성공하면서
청해부대 지휘부에서는 저격수를 제외한
사격중지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AM 07:57
이리하여 총 5시간에 걸친 인질구출작전은
8명의 해적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하며
막을 내리게 되었으며
21명의 인질들은 크고 작은 부상자들이 있었지만
한명의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
이번 작전에서 생포한 해적들은 모두 한국으로
송환되어 중형을 선고 받았으며
중상을 입어 병원으로 후송되어 수술을
했음에도 위급한 상태였던 선장은
한 대한민국 의료인의 숭고한 헌신으로
한국으로 이송되어 기적적으로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아덴만의 여명 작전> 은 한국군이 해외에서
수행한 최초의 인질구출작전이었으며
대한민국의 주도 아래 미국, 오만, 파키스탄 등
<항구적 자유 작전> 에 참가 중인 국가의
함정과 병력들의 지원을 받으며 작전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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