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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 직전에 사진을 촬영한 동학교주 최시형의 모습.jpg

by 프레임 2022.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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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형은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의 뒤를 이어 동학의 제2대 교주였던 사람이다. 

 

<최제우>

 

동학농민운동에도 참여했던 최시형은 우금치 전투 이후 동학군이 사실상 와해되자 관군의 눈을 피해 피신생활을 하면서 포교활동을 전개하였다.

 

도피생활을 하던 그는 결국 1898년 4월 5일(음력) 낮 12시경에 체포되어 서소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당시 72세의 고령이었던 최시형은 오랜 도피생활로 인해 건강이 매우 좋지 못했고 이에 고등법원은 중죄인을 병사(病死)시키는 것은 나라의 체면과 법의 위엄을 해친다고 판단해 재판을 서둘렀다.

 


<최시형의 판결문. 국한문혼용체가 이채롭다.>

 

결국 한 달뒤인 5월 29일, 그는 교수형을 선고받았는데 당시 판결을 내린 일원 중에는 동학농민운동을 촉발시킨 원흉이었던 판사 조병갑도 포함되어 있었다.

 

<조병갑>

 

조정에서는 곧바로 형을 집행하라는 명령을 하달했고 이에 겨우 4일 후인 6월 2일, 단성사 뒤편의 고등법원 감옥서에서 최시형은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나무위키에서는 참형당했다고 서술하고 있지만 교수형이 맞다.) 

 


<교수형이 집행되는 최시형의 모습을 상상한 그림>

 

처형 집행 직전에 당시 조선에 주재하던 한 러시아 공사가 최시형의 사진을 촬영하고 싶다는 의견을 내비쳤고 곧 허가를 받아 최시형의 모습을 몇 장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이 사진들이 바로 처형 직전의 최시형의 모습이며 두 사진 모두 몇 초 간격으로 촬영된 것이기 때문에 오른손의 위치가 달라진 걸 빼면 별반 차이점은 없다. 그리고 우측에 부착된 <"처교죄인 동학괴수 최시형(處絞 罪人 東學 魁首 崔時亨)">, 즉 "교수형에 처해지는 동학의 지도자 최시형"이라는 표제를 통해 해당 인물이 최시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진 속 최시형은 동상이나 고문의 영향인지 양발이 퉁퉁 부어있으며 심신이 지친 듯한 모습이 역력하다. 실제로 이 때 최시형은 건강이 매우 좋지 못해 혼자 앉아 있기도 버거웠기 때문에 사진을 촬영할 때도 누군가가 받쳐줘야 했다.

 


<얼굴을 확대한 모습>

 

사진을 자세히 보면 최시형의 옷고름 부분이 좌측으로 쏠려 뒤로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사진촬영 당시 누군가가 최시형의 몸을 지탱하기 위해 뒤에서 옷 끄트머리를 잡아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시형의 옆을 보면 누군가의 소맷자락이 살짝 보이는 걸 알 수 있다.

 

 

비록 쇠약해 보이는 모습이지만 눈빛만큼은 형형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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