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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처음 접한 중세 보헤미아 용병들의 이야기

by 프레임 2024.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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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초 신성 로마제국의 보헤미아 왕국(현 체코의 전신)에서는 후스파(Husitství)라고 불리는 개신교 세력이 성행했다. 이들은 로마 가톨릭에게 이단으로 찍혀서 여러차례 침공을 받았으나

보헤미아인들은 이에 맞서 싸우며 수십년에 걸쳐 자신들의 신앙을 유지했다.

 

하지만 1431년, 연이은 전쟁과 이상기후로 인해 보헤미아 전역에 몇년 동안 흉작이 들었다.

후스파 역시 이 시점부터 점점 쇠락해서 군대는 제대로 된 보급조차 받지 못할 정도였다.

 


 

후스파의 장군이었던 얀 차페크 (Jan Capek)는 신앙심이 밥먹여주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자신의 부대를 이끌고 다른 일거리를 찾아 떠났다.

이들은 용병이 되기로 한 것이다. 그들이 간 곳은 바로 옆나라 폴란드였다.

 


 

카를로비바리 산맥을 넘어 대평원으로 들어선 보헤미아 용병들은

당시 독일 튜튼 기사단과 영혼의 싸움을 벌이고 있던

폴란드 왕 브와디스와프 2세 (Władysław II Jagiełło)에게 찾아갔다.

안그래도 병력이 부족했던 폴란드에게 수십년동안 전쟁으로 단련된 보헤미아 용병들은 정말 귀중한 인재들이었다.

브와디스와프 2세는 이들에게 장비와 봉급을 주기로 약속하고 고용계약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폴란드는 보헤미아인들이 그토록 싫어하던 로마 카톨릭을 믿었으나

신보다 돈이 더 급했던 용병들에게 그런건 별 상관 없었다.

(어쩌면 둘 다 같은 서슬라브 민족이라서 이야기가 통했을 지도 모른다.)

 

 


 

1433년부터 보헤미아 용병들은 슐레지엔를 가로지르며 북쪽으로 전진했다.

보병 7천에 기병 350기였던 이들은 지나가면서 만나는 독일인 마을과 도시들을 그야말로 불태워버렸다.

요즘으로 치면 초토화전술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튜튼 기사단은 로마 카톨릭을 믿었으므로 보헤미아 용병들에게는

조국을 침략했던 가톨릭 진압군과 다를게 없는 놈들이었다.

수도원과 성당은 불태워졌고 사제와 신부들은 산채로 타르에 익사 시켰다.

간혹 튜튼 기사단에 종군하는 보헤미아인을 잡으면 '반역자'라고 부르며 참수했다.

 

1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 불태운 도시는 약 12개에 달했으며 긁어모은 전리품만 해도 몇년치 봉급에 가까웠다.

보헤미아 용병들은 폴란드군과 연합작전을 벌이기도 하면서

1433년 9월, 항구도시 단치히(Danzig, 현 그단스크) 기슭까지 진군했다.

 

 


 

그리고 그들 눈 앞에는 발트해(Baltic Sea)가 펼쳐졌다.

보헤미아 용병들은 끝도 없이 펼쳐진 검푸른 수평선을 보고선 전부 넋을 잃었다. 

 

평생을 산과 숲으로 둘러쌓인 내륙에 살던 보헤미아인들에게 바다란 난생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저 성경에서나 들어봤을 뿐이다.

차페크 장군도 발트해의 웅장한 위압감에 경도되어 말을 몰고 그대로 바다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보라, 형제들이여.

 

내가 너희들에게 고백하노니, 우리가 세상의 끝에 도달하였으니

즉, 바닷물이 앞을 가로막으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노라.

 

 

 

보헤미아 용병들 정말 자신들이 세상의 끝자락에 왔다고 생각했다.

한편, 단치히 수비대는 용병들이 금방이라도 폴란드군과 연합하여 도시를 공격할 거라고 여기며 가슴을 졸였으나

그런 일을 일어나지 않았다.

 

 


 

단치히 수비대 측에서 기록한 내용에 따르면

보헤미아 용병들은 전쟁이 끝나기라도 한 것 처럼 갑옷을 벗어둔 채

바다에 뛰어들어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고 전해진다.

그 모습은 마치 여섯살 어린아이 같았다고 한다.

어떤 용병들은 큰 항아리를 가져와 바닷물을 열심히 퍼담았다.

 

그렇게 며칠을 신나게 놀던 보헤미아 용병들에게 폴란드 기사단이 찾아와 그들의 전공을 치하하고

해변에서 일부 용병들에게 기사작위를 내려주기도 했다.

 


 

1433년 겨울, 튜튼 기사단과 휴전협정을 맺은 브와디스와프 2세는

보헤미아 용병들은 자신의 궁전으로 불러들였다.

차페크 장군과 그의 부하들이 맡은 임무를 훌륭히 수행 해주었다며 막대한 상금과 선물을 내렸다.

주머니가 두둑해지고 명예까지 챙긴 보헤미아 용병들은 자랑스럽게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후 몇 년 동안 보헤미아 왕국 전역에는 용병들이 겪고 온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졌다.

 

"산을 넘어 독일인 이단자들을 무찌르며 나아가다보니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그 곳에는 온통 물만 가득했다. 그 물은 소금으로 가득하여 짜디 짰다."

 

 

처음에 사람들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치부했지만

일개 병사들 뿐만 아니라 장군인 얀 차페크까지 같은 이야기를 해대니 신빙성이 있었다.

증거를 내놔보라고 하면 병사들은 항아리에 담긴 '소금물'을 접시에 담아 보여주며 으스댔다.

차페크 장군은 '소금물로 목욕을 한 자'라는 이명을 얻었다. (옛날에는 소금값이 금값이었으니까.)

 

종교전쟁이 끝나고, 신성로마제국이 멸망하여 보헤미아인들이

체코라는 자신들의 나라를 가지게 된 먼 훗날에도

바다를 보고 온 보헤미아 군인들의 이야기는 여러 세대를 거쳐 전해져 내려왔다. 

 

20세기 초에는 체코의 예술가들이 민족주의를 고취시키기 위해

이 이야기를 가지고 여러편의 시와 소설, 그림등을 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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