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돔과 고모라
구약성서 창세기에 따르면
그 죄악이 심히 무거워서
신의 진노를 사서 멸망한 도시
* 참고로 이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는 꾸란에도 등장해
사실 의외라면 의외지만
구약성서의 저자는
소돔과 고모라의 죄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다만 롯(아브라함의 조카)을 구원하기 위하여 온 천사들과 관련하여
소돔인들이
그들을 끌어내어 '강간'하려는 모습이 묘사되는데
이에 롯은 차라리 자기 딸들을 내어주겠다고(!) 하지만
소돔인들은 요지부동
천사들만을 원하여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 중에
일반적인 성적 방종은 물론 동성애가 포함된다는 것이
오랜 세월 주된 해석이었지
* 항문성교를 뜻하는 영단어 sodomy는 바로 이러한 해석에서 유래된 것이야
* 최근 들어 일부 진보적인 기독교인들 중에는 소돔의 죄악은 '우상숭배'였지 '동성애'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기는 한데... 뭐 굳이 소돔과 고모라 일화가 아니더라도 성서에서 동성애는 명백히 부정적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어쨌든 무슨 죄, 무슨 죄로
소돔과 고모라는
신의 진노를 사서
유황과 불로 인하여 멸망하였으며
롯과 그 가족만이 구원의 대상이 되었는데
그마저
롯의 딸들과 결혼하기로 하였던 정혼자들은
예비 장인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겼다가
도시와 함께 멸망하였으며
천사들이 전한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어긴
롯의 아내 또한
'소금기둥'이 되어버리는 등
롯 일가 역시
엄청난 참상을 겪어야 했지
* 그리고 롯과 동굴로 피산하여 살던 두 딸은 어느 날 아버지에게 술을 먹여 야스를 하고 각각 모압과 암몬이라는 아들을 낳음 ㄷㄷㄷ
이렇게 성서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스토리에 대해 대략적으로 소개하여 봤는데
죄악의 도시에 대한 신의 진노와 멸망
이라는 스토리는
분명
이 사건의 실제 여부와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내용일 거야
그리하여 많은 고고학자나 성서 연구자들이
이 소돔과 고모라의 흔적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는데
이제 그에 대한 소개를 하여볼까 해
* 성서가 고고학의 발견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할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아시리아로 한 때 많은 지식인들이 아시리아는 그저 성서에서나 등장하는 '상상의 제국'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성서의 내용에 영감을 받은 발굴 작업의 결과 우리는 최초로 고대 오리엔트를 통일한 세계제국의 존재를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지
본격적으로 고고학적인 내용들을 소개하기에 앞서
실제로 사해 일대에서는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연적인 지질현상들이 있는 것을
먼저 짚고 넘어가 보려고 해
사해 지역에서는 두 개의 거대한 육괴가 부딪혀 침강하는 과정에서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데
역사 기록을 통해서도
과거에 지진으로 인해 많은 도시들이 파괴된 것을 확인할 수 있어
특히 지질학적 단층선에 위치한 도시들은 더욱 심했는데
지진은 또한 지표면에 매우 낮은 지점을 만들어내서
깊은 단층대에 있는
사해는 해수면보다 낮으며
농도 짙은 염수로 이뤄져있지
그리고 그 인근 지역까지
소금 성분이 침투하여
얼핏 사람을 닮은 소금기둥이 생겨나기도 하는데
이러한 것을 보고
고대인들은
'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으로 변해버렸다'와 같은
전설을 만들어냈을 거야
* 또한 사해에 물건을 빠뜨리면 순식간에 소금으로 덮이는데, 그와 같은 자연현상 또한 '롯의 아내' 전설이 만들어지는데 영향을 주었을 수 있지
* 사해의 또 다른 특성은 역청이 풍부하다는 점으로 역청은 이따금 수면 위로 분출되어 마치 기름덩어리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소돔과 고모라의 왕들이 전투 도중 달아다나가 '역청 구덩이'에 빠졌다는 창세기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창세기 14장의 스토리에서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위하여 소돔과 고모라의 적을 물리침)
* 사해 주변의 땅에서는 부드러운 흙 속에 주먹만한 유황덩어리가 박혀 있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고대인들은 이 가연성 덩어리들을 유황불로 인식했을 것이며, 하늘에서 쏟아지는 유황비와 도시들의 파괴가 그 이상한 물체로 인한 것으로 여겼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소돔과 고모라와 관련한
본격적인
고고학적인 관심이 시작되고
관련 학자들 간의
첫 번째 논쟁은
그 위치에 관한 것 이었는데
소돔과 고모라가
사해의 북부냐 남부냐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지
1851년 드 솔시는 사해 사해 북서부를 조사 한 뒤
예리코와 쿰란이 그 사라진 도시들이라고 주장했어
그리고 1920년대 알렉시스 마용 신부는
북동부 해안의 텔레일라트 가술을 발굴하여
동석기 시대의 대형 주거지(기원전 3600년경)를 찾아냈는데
이것이 더 유력한 후보지로 추정됐지
하지만 이 주장에도 난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소돔과 고모라의 연대로 추정하는 청동기시대(기원전 3150~1550)에 해당하는
주거지 유적이 없었다는 것이야
소돔과 고모라를 찾는 노력은 1930년대에도 계속되어
르 P. F. 아벨, F. 프랭크 넬슨 글루크는 사해 남부의 얕은 지역을 조사하였는데
이 염전지대는 폐허(신명기 29 : 23)와 염해의 옆에 싯딤 골짜기가 있다(창세기 14:3)는 구약성서의 설명과 부합했지
그리고 1967년 고고학자 폴랩의 지휘 하에
'밥에드드라'에 대한 발굴작업이 시행되었는데
그곳에는
성벽이 있어서
도시의 흔적이 발견되었고
대형 주거 단지와 함께
수천개의 유골 단지와 유골, 귀금속 부장과 7백여개의 부장품 단지가 발견되었지만
그러한 매장은 기원전 2350년 경 갑자기 중단되어
어떠한 재앙으로 인하여
도시가 급격히 멸망하였던 것으로 추정되었고
이곳이 소돔이라는 주장이 한 때 힘을 얻었지만
이후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이 도시가 멸망한 것은
자연재해 때문이 아니라 외세의 침공 때문이었으며(물론 구약성서에서도 소돔과 고모라가 침공 당하는 것이 묘사되기는 하지만, 멸망의 직접적인 이유는 하늘에서 쏟아진 유황과 불 이었지)
일부 화재 흔적 또한
인간에 의한 고의(목재 성벽을 뚫기 위해)에 의한 것 이었음이
열 변성에 의해 붉게 변한 진흙 벽돌더미가 나옴으로써 확인되었어
그리고 오히려 남쪽에 있던 밥에에드라의 소규모 자매도시 누메이라가 오히려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
누메이라의 경우는 외침의 흔적은 없지만 대규모의 화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곳
그리고
최근의 연구성과에 있어서
소돔의 유적지로 급부상 한 곳은
콜린스의 주도로 발굴 사업이 이뤄진
탈 엘 하맘 지역으로
이곳은 기원전 초중기 청동기 시대에
크게 번영하였으나
갑자기 멸망하여
700여년 동안 사람들에게 버려진 황무지가 되었던 곳이야
물론 탈 엘 하맘 역시 그 멸망의 이유는 아직까지 불분명한 편이지만(콜린스는 지진으로 추정)...
* 이외에 소돔과 고모라가 사해의 수면 아래 잠겨있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는 기원후 4세기 순례자인 에게리아가 처음 제기했고 19세기 후반 윌리엄 린치, 올브라이트, 카일에 의해 사해의 북쪽 끝자락에서 물이 잠긴 작은 섬 몇 개가 발견되기도 하였어(이 이론은 많은 학자들의 지지를 얻었고 NASA 또한 위성사진으로 사해를 조사하고 있으며 잠수정을 이용한 해저 탐사로도 사라진 도시들을 찾기 위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어)
* 이렇게 소돔과 고모라가 과연 어디인지는 의견이 갈라지만, 사해 지역은 지반이 약한 곳으로, 번성하던 고대 도시가 어느 날 갑자기 멸망하였던 일이 정말로 있었다면... 많은 학자들이 그 원인으로 지진을 꼽아(큰 지진으로 번영하던 어느 도시가 갑자기 몰락한 것이 유황과 불에 의해 도시가 멸망했다는 전설이 될 가능성 또한 충분히 높고)
* 지반이 약한 곳에 굳이 사람들이 모여들어 도시를 건설한 이유는 천연 아스팔트를 비롯하여 사해 근처에 자원이 많았기 때문으로 추정됨
성서에 묘사된
소돔과 고모라의 근처 도시이자
롯이 일차적으로 피난하였던 소알이 표기된
독특한 모자이크 바닥 지도
* 이 지도에 따르면 소알은 사해의 남동쪽 끝에 존재해
* 참고로 디오도로스, 스트라보, 요세푸스, 타키투스 같은 고대 역사가들과 중세 아랍의 지리학자인 야쿠트, 마순디, 무카다시, 이븐 아브스 등도 이 지역에 관해 설명한 기록이 존재함
* 현대에는 1924년 윌리엄 F. 올브라이트, 멜빈 G 카일 목사, 알렉시스 마용 신부 등이 소알의 위치를 찾기 위해 그 일대를 조사했는데, 소알을 모압의 땅으로 추정한 그들은 성서에서 아르논강이라고 표현한 무자브강의 남쪽을 계속해서 찾았으며, 리산 반도와 인근의 유역들을 조사한 뒤 현재의 사피가 고대의 소알이라고 결론을 내림(이 이론은 일찍이 존 모던빌이 1322년에서 1356년까지 사피에 머물렀을 때 제기한 것과 같아)
1990년대 콘스탄티노스 폴리티스(이 사람의 연구에서도 사피는 위 지도에 묘사된 소알에 해당함)에 의해 발굴된 데이르아인아바타(사피의 인근인)의 동굴 위의 교회
이곳은 초기 그리스 정교회에서
소돔과 고모라가 파괴된 뒤 롯이 피신했다고 믿었던 동굴로
로마 시대의 기록에도 이 유적에 대해 사람들이 존경심을 가지고 있던 것이 기록되어 있으며
실제로도
청동기시대 초기와 중기의 물건들이
추가로 발견됨으로써
그 시절에도 사람들이 살았음이 입증되기도 하였어
최종 결론으로서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는
종교와 믿음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라는 이름 그대로의 도시의 실존 가능성을 포함하여
그러한 기록의 모티브가 될 만한 했던
사건은 충분히 존재할 수 있던 일로
설령 지금까지 발굴된 유적들이
고대에 존재했던 소돔과 고모라가 아니더라도
청동기 시대 번영하였다 파괴되었던
도시들에 대한
후대의 추적은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 아닌가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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