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보

아즈텍에 저항한 틀락스칼텍의 전설적인 검투사

by 프레임 2021. 6. 21.
728x90
반응형

1516년 당시엔 중남미 최강의 제국으로 아즈텍이 떠오르는 시대였다.

아즈텍 황제였던 몬테수마2세는 남은 틀락스칼텍 부족들을 인간제물로 바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음.

 

틀락스칼텍 부족은 틀라우이콜(Tlahuicol)이라는 장군을 중심으로 아즈텍에 항거했고

여러번 승리를 거두었지만 결국 아즈텍의 술수로 틀라우이콜은 사로잡히고 만다.

 

몬테수마2세는 자신을 괴롭혔던 이 틀락스칼텍 장군을 모욕하기위해

일종의 검투경기를 개최했는데, 바로 아즈텍 제국 사회에서 흔히 보이는 '죽음의 검투'였다.

 

 

 



당시 틀라우이콜이 벌였던 죽음의 검투를 고증한 그림인데

 

좁은 원형 경기장안에 밧줄로 몸을 제약당한 틀라우이콜에게

아즈텍에서 인정받는 전사들은 재규어, 독수리 전사들이 차례차례 죽을때 까지

1대1 결투를 벌이는 방식이었음.

 

 

 

밧줄로 몸을 제약당한거 말고 틀라우이콜이 불리한점이 많이 있었는데 보다싶이 아즈텍 재규어, 독수리 전사는 틀라우이스틀리라는 방어용 솜갑옷을 입어서 타격에 몸을 방어할수있었지만, 틀라우이콜에겐  보다싶이 방어용 솜갑옷은 커녕 걍 천옷입히고 싸우게 함. 

 

게다가 무기역시 달랐는데 아즈텍 전사들은 자세히 보면 무기에 흑요석 칼날이 박혀있지만, 틀라우이콜의 무기는 흑요석 칼날이 박혀있지 않음을 알수있다. 축구로 치자면 축구화 맞춘 적팀 vs 슬리퍼 신고 축구하는 아군팀 이런꼴임

 

더 불리한점은 틀라우이콜이 아즈텍 전사 하나를 우연치 않게 잡았다라고 하더라도, 쉬는 시간없이 다음 아즈텍 전사 대기자가 바로 투입해서 검투를 열게했다.

 

 

이렇게 아즈텍이 적군에게 불리하고 아군에게 유리한 검투경기를 개최한 이유는 바로 아즈텍 신민들에 대한 자긍심 고착화이자 아즈텍 황실의 프로파간다였다. 아즈텍은 전사사회로서 남성이면 거의 무조건 군대생활을 보내야됬기 때문에 아즈텍 신민들로선 당연히 '항상 승리하는 자국의 전사'를 보고싶었기 때문.

 

 

 

하지만 이런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틀라우이콜은 쓰러지지않았다. 왜냐면 자신이 쓰러지는 순간은 자신의 조국인 틀락스칼텍이 아즈텍에게 무릎 꿇는다는걸 의미했기 때문.

 

솜갑옷도 없고 흑요석 칼날도 없는 맨몸 나무몽둥이의 틀라우이콜은 몬테수마2세가 직접 선발한 아즈텍 재규어, 독수리 전사들을 하나 둘씩 쓰러뜨리기 시작함. 

 

 

이 고증 그림에서도 볼수있듯이 푸픈 비취색 복식의 몬테수마2세와 그옆의  아즈텍 황실귀족들은 틀라우이콜의 돌발행위에 경악하고 만다. 틀라우이콜은 불리한 검투경기에 무려 단신으로 아즈텍 재규어, 독수리 전사 8명을 때려 죽인것이다.

 

 

 

이는 아즈텍 사회에선 결코 일어나서도 안되고, 일어날수 없는 일이었기에 몬테수마2세와 아즈텍 귀족들은 동요하기 시작함. 본래 유리하게 판을 짜두었고 당연히 이겨야할 검투경기에 무려 풀템 재규어, 독수리 전사 8명이 고인물 노템 틀락스칼텍 전사에게 죽었으니깐.

 

 

 




몬테수마2세는 틀라우이콜에게 직접 말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줄테니 아즈텍 장군으로서 자신의 휘하로 들어오라고 유혹하였다.

 

 

하지만 틀라우이콜은 그런 몬테수마2세의 말을 거절하면서 '만약 자신이 아즈텍의 장군이 된다면 조국 틀락스칼텍에 있어 더없는 배신자로 낙인찍히게 될것이다'라고 말함.

 

 

몬테수마2세는 그의 의지를 깨닫고 결국 검투경기를 중단시킴. 그리고는  아즈텍 대신전아래에 틀라우이콜을 인간제물로 바침으로 아즈텍에 저항했던 용맹스러운 틀락스칼텍의 전사는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