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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이 극대노했던 사건

by 프레임 2021.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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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다 만들고 나니깐

 

집현전 학자들이 단체로 몰려와서

 

훈민정음 반포하시면 안됩니다아아아아 중국에 반하는 행동입니다아아

 

해서 세종대왕 혼자서 학자들이랑 설전 벌이는데

 

마지막에 정창손이 미개한 백성이 글자 좀 안다고 유교를 공부합니까?

 

말했다가

 

세종이 조선왕조실록 기록된 내용중에 최초로 열받아서 유교의 근본이 뭐냐 아무리 천하고 무식한 사람도 배우면 된다인데 선비라는새끼가 유교의 근본을 무시해? 이 선비같지도 않은 새끼야

 

라고 되어 있음 ㅎㄷㄷ

 

세종 기록중에 유일하게 존나 화낸 장면이고

 

그 다음에 짤처럼 평소의 모습이 아니라 존나 감정적으로 내가 왕이야 시발 왕이 맘대로 하겠다는데 니들이 반대해 시발?

 

이런식으로 밀어붙이고

 

이 다음에 토론이고 뭐고 집현전 학자들 다 항명죄로 감옥에 쳐집어넣고 정창손은 파직시켜버림

 

그 다음에 훈민정음 반포함

 

 

 

 

위의 세종과 정창손의 일화가 세종이 유일하게 화를 냈다는 사건으로 알려져있는데

 

사실 말년에 한번 더 화를 냈던 기록이 있었음.

 

때는 1450년, 명 황제 정통제가 몽골 오이라트족에게 사로잡혀버린 '토목의변' 이후

 

임시(?)로 황제를 이어받은 경태제의 즉위를 알리는 칙사가 도착했음

 

명나라 귀빈 대접은 원래 왕의 주 업무중 하나였는데 문제는 세종이 건강이 안좋았음

 

그럴 경우 세자가 대신 대접해야하는데 당시 대리청정 중이던 문종도 종기가 악화되어 도저히 사람을 맞이할 상태가 아니였음

 

그래서 세종은 대신들을 모아놓고 접대방식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는데

 

세상물정 모르는 신하들이 "왕이 아프면 세자가, 세자가 아프면 세손이 하면 그만아님?"

 

이런 실없는 의견을 내놓았음

 

근데 당시 세손(단종)은 겨우 9살이였는데

 

9살배기를 시켜서 귀빈을 대접하라고 의견을 내놓으니, 가뜩이나 건강이 안 좋아서 신경이 날카로웠던 세종이 극대노하여

 

 

 

 

 

 

"실지의 일에 쓸모없는 선비[迂儒]" , 혹은 "더벅머리 선비[竪儒]" 라고 화를 냈다고 함.

 

결국 사신 접대는 둘째아들 수양대군(세조)가 하고, 칙서는 세자(문종)이 주변 신하들의 부축을 받아 겨우 받았다고 함.

 

당시 명나라 칙사들의 입장에서는

 

원래 나와야할 문종은 아프다는 핑계로 코빼기도 안보이고, 둘째아들이 대접하겠다고 나왔으니

 

"아니, 왕 아픈건 알겠는데 젊은 세자도 병 핑계로 얼굴도 안비추는건 우리 너무 무시하는거아님?"

 

"수양대군은 세자랑 어머니가 같긴 하냐?" 이런식의 반응을 보였고

 

조선에선 열심히 해명에 나섰다고 함

 

 

 

실록 원문

세종실록 127권, 세종 32년 1월 18일 갑오 1번째기사 1450년 명 경태(景泰) 1년

 

 

임금과 동궁이 몸이 불편하여 조서를 맞이하는 방법에 대해 대신들과 의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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