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지금 부왕이 나를 불효자라 하여 칼을 보내 자결을 명하시니, 어찌 아버님의 명을 거역할 수 있겠는가?"
- 해명태자 ( BC 12 ~ AD 9 ) , 고구려 2대 유리명망의 둘째 아들
- 자결 이유 : 이웃 황룡국에서 선물한 강궁을 꺾어 이웃 나라와의 화친을 깼다는 이유로 자결을 명 받음.
- 이 후 들판에 창을 꽂고 말을 타고 뛰어들어 자결함.
"내가 만약 변명을 하면 이것은 어머니의 악함을 드러내어 왕께 근심을 끼치는 것이니, 이것을 어떻게 효도라고 할 수 있겠는가."
- 호동왕자 ( ? ~ ? ) , 고구려 3대 대무신왕의 맏아들
- 낙랑 공주를 이용하여 낙랑을 정복하는 등, 군사적으로 호동이 명성을 높여가자 그가 태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
대무신왕의 첫째 왕비가 자신에게 못된 짓을 했다 라고 참소하는 등 호동을 모함하고, 결국 억울하게 누명을 쓰자
그는 마지막 말을 남기기고 자결함.
"탈해는 신분이 나라의 친척이고 지위는 날 보좌한 신하이니 여러 번 공이 있다. 짐(朕)의 두 아들은 그 재능이 따라오지 못하니 내가 죽은 뒤, 대위(大位)를 있게하라. 내 유훈을 잊지 말라."
- 유리 이사금 ( ? ~ 57) , 신라 제3대 국왕
- 33년을 재위한 후 중병에 걸리자 두 아들보다 매제 석탈해의 재능이 뛰어나니 탈해에게 왕위를 맡긴다는 유언
- 근데 후에 두아들 모두 아버지 평가와는 다르게 왕이 됨. (파사 이사금, 일성 이사금)
"내가 행실을 잘못했으니 장차 무슨 면목으로 지하에서 국양왕을 뵙겠는가? 만일 여러 신하들이 나를 차마 구렁텅이에 버리지 못하겠거든 산상왕의 능 옆에 장사 지내주기를 청하노라."
- 왕후 우씨 ( ? ~ 234 ) , 고구려 제9대 국왕 고국천왕의 왕후, 고구려 제10대 국왕 산사왕의 왕후
- 왕후를 2대동안 유지한 이유는 '형사취수제', 한국사 유일
- 원래는 자식이 없던 고국천왕의 바로 아래 동생인 '발기'가 왕위 계승하는 것이 당연했으나, 발기에겐 고국천왕의 승하 사실을 언급안함.
하지만, 넷째 동생인 '연우'에게 승하 사실을 바로 알려서, 왕후 우씨의 지지를 받아 산상왕으로 즉위함.
- 물론 우씨 왕후는 '발기'를 먼저 찾아갔으나 문전박대 당했고, 연우를 찾았을땐 연우가 고기를 썰다 칼에 베이자 우씨가 치마끈을 풀어 상처를 감싸 주었고, 두사람이 손을 잡고 왕궁에 돌아왔다란 언급이 있다.
- 234년 ( 동천왕 8년 ) 에 사망한다. 사망하기전 유언을 남기는데, 살아서 한 짓을 돌이켜 보니 고국천왕을 보기 면목이 없어 위의 유언을 남긴다.
"전일의 말은 희롱이었을 뿐이었다. 어찌 군사를 일으켜 이렇게까지 할 줄 생각하였겠는가."
- 석우로 ( ? ~ 253 ) , 신라 제10대 국왕 나해 이사금의 아들
- 기록이 모호한 신라 초기에서도 여러 전쟁에서 활약한 몇 안되는 명장.
- 첨해 이사금 3년. 석우로는 일생일대의 말 실수 혹은 의도적인 도발을 한다. 바로 왜국 사신 앞에서 왜왕을 모욕하는 말을 하였다.
"조만간에 너희 왕을 소금 만드는 노예로 만들고 왕비를 밥 짓는 여자로 삼겠다."
이 말을 듣고 개빡친 왜왕이 장군 '우도주군'을 보내 신라를 쳤다. 석우로는 자신이 자초한 일이니 스스로 전쟁에 책임을 지겠다며 적진으로 가서 말했다. "전일의 말은 희롱이었을 뿐이었다. 어찌 군사를 일으켜 이렇게까지 할 줄 생각하였겠는가."
이말을 들은 분노한 왜군에 의해 그 자리에 화형을 당한다.
"내가 죽은 뒤에 내 묘지기는 내 친히 돌아다니며 잡아온 한(韓)인과 예(穢)인들에게만 맡겨서 무덤을 지키고 소제하게 하라."
- 광개토태왕 ( 374 ~ 413 ) , 고구려 제19대 국왕
- 겨우 39세의 창창한 나이에 승하. (일생동안 전쟁터를 오갔으니, 그 나이에 병이나 과로로 사망해도 이상할 것은 없음.)
- 아들인 '장수왕'이 '광개토대왕릉비'를 세우고 국강사 지역의 산릉에 매장해주었다.
"나는 우둔하고 밝지 못해 간사한 자의 말을 믿어 이렇게까지 되었다. 백성은 쇠잔하고 병사는 약하니 위기가 오더라도 누가 기꺼이 나를 위해 싸우겠는가. 나는 당연히 사직을 위해 죽어야 하지만 너는 이곳에서 죽어도 무익하다. 어려움을 피해 국통을 이어라."
- 개로왕 ( 433 ~ 475 ) , 백제 제21대 국왕
- 475년 9월, 고구려 장수왕이 3만의 병력을 이끌고 전격적인 백제 침공을 단행.
최악의 상황을 예감하고, 태자 문주를 신라에 보내 '자비 마립간'에게 만명의 구원병을 얻어오라고 하며, 사실상 유언이나 다름없는 위의 말을 남김.
그러나 백제는 불과 7일 만에 방어 전선이 무너지고, 신라 구원군이 오기도 전에 위례성이 함락.
- '개로왕'을 사로잡은 백제의 배신자 '재증걸루'와 '고이만년'은 일단 말에서 내려 옛 임금인 '개로왕'에게 절을 하고, 왕의 낯을 향하여 세 번 침을 뱉고서 죄목을 따진 다음 '아차성'으로 끌고 가 참수해 버린다.
그래도 일국의 왕인데 묘비도 없이 매장해 버렸다..
- 한편 그의 아들 '문주왕'은 신라로가서 구원군을 이끌고 도착하기 전에, 한강 유역은 이미 고구려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과인이 생각할 때마다 늘 고통이 골수에 사무쳤다. 돌이켜 생각해 보아도 구차히 살 수는 없다."
- 성왕 ( ? ~ 554년 12월 ), 백제 제26대 국왕
- '일본서기'에 따르면 관산성 전투에 패한 후, 사로잡힌 '성왕'이 참수당하기 직전 남긴 마지막 말.
"나는 어느 해 어느 달의 어느 날에 죽을 것이니, 내가 죽으면 도리천에 묻어 주시오."
선덕여왕 ( ? ~ 647년 1월 8일 ) , 신라 제27대 국왕
- 647년 1월 , '비담'이 '염종' 등과 더불어 '비담의 난'을 일으키고 "여왕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라는 '여주불능선리'라는 명분을 내세워 웠다.
이렇듯 어수선한 정국을 정리하지 못하고 반란 중에 마지막 말을 남기고 생을 마감
- 사망원인은 확실치 않으며 병사설, 반란의 충격으로 쇼코사설, 피살설 있다.
그 중 피살설은 당시 김유신이 선덕여왕을 호위했는데, 김유신은 멀쩡해서 설득력이 낮음.
- 보통 원래 건강이 좋지 않았고 '비담의 난'이 일어난 타이밍도 '선덕여왕'의 건강 악화를 틈탄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
"너희 형제는 고기와 물같이 화합해 작위를 다투는 짓을 하지 말라. 만일 그런 일이 있으면 반드시 이웃 나라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 연개소문 ( 603 ~ 665 ) , 고구려 초대 대막리지
- 고구려- 당 전쟁 중에 동맹국이던 백제가 660년 나당연합군에게 멸망하던 중, 고구려는 후방이 위험해지는 등의 위기를 맞았으나 '연개소문'은 당나라군을 전멸시키는 무용을 보인다.
이런시기에 '연개소문'은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하는데, 자식들이 걱정이었는지 마지막 말을 남긴다.
통일신라시대 ( 남북국시대 )
"이때까지 우리 강토는 삼국으로 나뉘어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 이제 삼국이 하나로 통합돼 한 나라가 되었으니 민생은 안정되고 백성들은 평화롭게 살게 되었다. 그러나 동해로 침입하여 재물을 노략질하는 왜구가 걱정이다. 내가 죽은 뒤에 나라를 지키는 용(護國大龍)이 되어 불법을 받들고 나라의 평화를 지킬 터이니 나의 유해를 동해에 장사 지내라."
- 문무왕 ( 626 ~ 681년 7월 1일 ) , 신라 제30대 국왕
- '문무왕'은 나당 전쟁으로 삼국시대를 종결시킨 이후 5년 뒤인 681년 음력 7월 1일 에 유언을 남기고 승하했다. (김유신 기일과 같다.)
"나의 유골을 동해에 뿌려 주어라."
- 효성왕 ( ? `~ 742년 5월 ) , 신라 제34대 국왕
- 742년 왕이 젊은 나이에 죽자 유언에 따라 유해를 법류사 남쪽에서 화장하여 동해에 뿌렸다.
"병이 위급하니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불행히 사자(嗣子)가 없으나 나의 누이 만(曼)은 천자가 명예하고(재능이 명석하고) 골상이 장부와 같으니 경들은 옛날 선덕여왕, 진덕여왕의 고사를 의방하여 세우는 것이 좋을 것이다."
- 정강왕 ( ? ~ 887년 7월 5일 ) , 신라 제50대 국왕
- 재위 기간이 딱 1년 365일 이며 20대 중반을 넘기지 못하고 유언을 남기고 요절하였다.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악의 독재자인 히틀러의 의외점 (0) | 2021.06.03 |
---|---|
해외에 있는 한국 문화재들 (0) | 2021.06.03 |
고려시대 '왕/왕족/실세' 들의 유언 (0) | 2021.06.03 |
세종대왕이 극대노했던 사건 (0) | 2021.06.03 |
대한민국을 먹여살리는 15대 주요 수출 품목 (0) | 2021.06.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