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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조선시대의 역사 노비의 삶

by 프레임 2021.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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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는 조선 시대의 최하층 신분이다.

 

물건처럼 사고 팔렸던 데서 노비의 처지는 단적으로 드러난다. 

 

노비는 개인에게 예속된 사노비와 관에 소속된 공노비로 크게 구분되었는데 사노비는 주인집의 가사 노동을 비롯한 온갖 잡무를 도맡아 하였고

 

공노비는 관청에서 잡역을 담당하였다.

 

조선 시대에 사노비가 없는 양반의 삶이나 공노비가 없는 관청의 모습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최하층 천민이었던 노비의 처지는 그야말로 열악하였는데 다음 일화는 이를 잘 보여 준다.

 

 

 

 

내가 젊은 시절 금천 시골집에서 책을 읽고 지낼 때였다. 봄날 한강의 얼음이 단단하지 않아 행인들이 많이 빠져 죽었다.

 

한 의금부 종이 등에 쌀을 지고 강을 건너는데 얼음이 꺼져 몸의 절반만이 얼음 위에 걸쳐 있게 되었다.

 

 



같이 가던 이가 “등에 지고 있는 짐을 풀어 버리면 살 수 있네.”하고 말하자 의금부 종이 말하기를

 

“당신이 나보고 이 짐을 버리라고 하는가? 이 짐을 버리고 산다면 살아서 당할 고통이 죽는 것만 못할 것이오.”라고 하였다.

 

얼마 안 있어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유몽인(柳夢寅, 1559~1623), 『어우야담(於于野談)』

 

 

아마도 유몽인이 전해들은 이야기로 생각된다.

 

유몽인은 의금부 종의 어리석음을 탓하는 한편 종이 스스로 목숨을 포기할 만큼 가혹한 환경에 혀를 찼다. 

 

 



임매(任邁, 1711~1779), 『잡기고담(雜記古談)』에서

 

“게으른 사람을 꼭 ‘종놈[奴隷]’이라고 하고, 어리석고 미련한 자를 조롱할 때는 반드시 ‘종놈의 재간[奴才]’이라고 한다.”면서

 

조선에서는 종들을 짓밟기를 마치 개와 돼지, 소와 말처럼 한다고 지적하였다.

 

 

 

 

 


양민과 천민은 서로 혼인을 맺을 수 없다.

 

이 때문에 부유하면서 친족들이 강성한 노비들은 갖은 방법을 다 써서 노비 대장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신분을 숨길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상전을 살해하는 자도 있었다.

 

근세 이래로 법망이 느슨해져서 오늘날에는 양민과 천민의 경계가 거의 흔적도 없이 되어 버렸다. 내가 듣자니,

 

백여 년 전에는 가난하고 몰락한 양반이 추노(推奴)를 하러 갔다가 해를 당한 일들이 비일비재하였다고 한다.

 

임매(任邁, 1711~1779), 『잡기고담(雜記古談)』

 

 

 

 

 

 

노비들이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하고자 했던 상황은 1684년(숙종 10) 적발되어 큰 충격을 준 살주계(殺主契) 사건에서 잘 드러난다.

 

‘살주계’는 글자 그대로 주인을 살해하기 위한 목적에서 결성된 계 조직이다.

 

계원 가운데는 당시 남인 실세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목래선(睦來善, 1617~1704)의 노비도 포함되어 있었다.

 

살주계를 조직한 사실이 발각되자 목래선은 자신의 노비를 잡아 죽였다.

 

 



포도청에서 관련자들을 신문한 기록에 따르면 살주계원들은 모두 칼을 차고 있었고, ‘양반을 죽일 것’, ‘부녀자를 겁탈할 것’,

 

‘재산을 탈취할 것’ 등의 강령을 내세웠다고 한다.

 

또 남대문과 언관(言官)들의 집에 ‘우리들이 모두 죽지 않는 한 끝내는 너희들의 배에 칼을 꽂으리라’라는

 

섬뜩한 내용의 방을 붙인 사실도 자백하였다.

 

살주계 사건은 노비들의 양반에 대한 적개심과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려는 욕구가 얼마나 컸던가를 잘 보여 준다.

 

 



혜화문(惠化門) 밖의 냇가 동쪽에 석벽이 있었다. 거기에 돌로 만든 처마가 덮여 있고 두 개의 기둥이 지탱하고 있는데

 

기둥 역시 모두 돌로 만든 것이다.

 

벽면에 불상 하나가 조각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노비부처[奴佛]’라 부르고 그 시내를 ‘불천(佛川)’이라 이름 지었다.

 

도성 동쪽의 나무하는 노비들이 날마다 그 밑에 모여들어 올려다보며 욕하기를,

 

“우리를 남의 종으로 만든 놈이 이 불상이다. 불상이 무슨 면목으로 우리를 쳐다본단 말인가.”

 

하면서 낫을 추켜들어 눈을 파내니 불상의 두 눈이 모두 움푹 파였다.

 

성대중(成大中, 1732~1809), 『청성잡기(靑城雜記)』

 

노비로 태어난 자신들의 억울한 심정을 애꿎은 돌부처에게 화풀이하는 모습에서 노비들의 불만이 그대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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