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 3일 이와테현에서 태어난 소년은
어린시절 아버지와의 캐치볼을 통해 야구에대한 즐거움을 알게되었다.
야구선수로서의 꿈을 키우던 소년은 초등학교 3학년때 야구부에 들어가며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겨울 가족들과 도쿄 디즈니랜드로 놀러갔는데
이것은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여행이였다.
2011년 3월 11일 전세계에 충격을 준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났고
그의 고향인 이와테현은 그 피해를 직격으로 받았다.
이 지진으로 인해 자신의 아버지와 조부모를 모두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게 되었고
그의 집도 대형 쓰나미에 쓸려가버렸다.
한순간에 고향과 가족을 잃은 소년은 어머니와 함께 이와테현 남부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아버지와 자신의 꿈인 야구선수가 되기 위해 다시 야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의 장래희망은 부자였다.
왜냐하면 당시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다나카 마사히로가 맹활약을 하며
동일본 대지진 이후 좌절하였던 도호쿠 사람들이 용기를 얻는 모습을 보며 큰 영감을 받게 되었다.
이에 자신도 다나카처럼 야구인으로서 선한 영향력을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퍼뜨리고 싶었고
그러한 일을 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였다.
중학교 시절 전국대회에서 140km를 던지는 활약을 하며 강속구 투수로 이름을 날렸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여러 명문 고교로부터 스카웃 제안을 받았지만
그는 지역 내의 고등학교를 고시엔으로 보내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명문고교들의 스카웃 제안을 전부 거절하고 이와테현에 있는 오후나토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주전으로 출전했으며
2학년이되자 최고구속 157km를 찍으며 초특급 유망주의 탄생을 알렸다.
사사키 로키에게는 레이와의 괴물이라는 호칭이 붙여졌고
고등학교 3학년, 고시엔 진출을 위한 현 예선에서부터 에이스로 활약하며 팀을 결승에 올려놓았다.
당시 그의 상대는 기쿠치 유세이와 오타니 쇼헤이의 모교였던 하나마키히가시 고교였고,
오후나토 고교의 초특급 에이스였던 사사키의 존재만으로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러한 관심 속 아사히 TV는 카메라 50개를 동원해 생중계 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결승전 당일 9일동안 4경기 등판해 435개의 공을 던진 사사키의 몸상태를 고려해
그를 마운드에 올리지 않았고 12:2로 패배하며 고시엔 진출이 좌절되었다.
이후 드래프트 신청서를 낸 사사키는 4팀의 중복 지명을 받았고
드래프트 당일 뽑기싸움에서 지바롯데가 승리하며
사사키를 지명하는데 성공하였고, 사사키는 1억엔의 계약금으로 지바 롯데 마린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입단 첫해인 2020년 당시 1군 감독이였던 이구치는 아직 공을 던질만한 몸이 완성되지 않았다며
그를 1,2군 통틀어 단 1경기의 등판도 시키지 않았다.
1년동안 교정을 받으며 몸을 완성시켜나간 사사키는 이듬해인 2021년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연습경기와 2군에 등판하며 서서히 제구를 잡아갔고 5월 16일 1군 데뷔전을 치르며 아버지와 자신의 꿈을 이루게 되었다.
전반기에는 아쉬운 모습을 보였지만 후반기에 각성하며 퍼시픽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최연소 선발 투수라는 신기록을
세우며 최고 구속 159km의 패스트 볼을 던지며 6이닝 10K 비자책 1실점을 기록하며 다음시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이듬해인 2022년 드디어 본격적으로 구속이 올라오기 시작하며 최고구속 164km를 찍으며 괴물같은 모습을 보였다.
4월 10일 오릭스와의 경기에서 13타자 연속 삼진이라는 세계 신기록과 NPB 단일경기 및 정규이닝 최다 탈삼진 타이 기록인 19K를 달성했다.
그러나 압도적인 전반기와는 달리 후반기에는 구속이 떨어지며 고전했고, 감독은 과잉보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시즌이 끝나고 사사키는 뛰어난 활약을 바탕으로 2023 WBC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었고, 팀에서의 주축 선발을 맡게 되었다.
3월 11일 체코와의 WBC 조별리그 3차전에 선발로 등판하며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뤘다.
이 날은 12년전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해 돌아가신 아버지와 조부모님의 기일이였기 때문에 사사키에는 더욱더 뜻깊은 등판이였다.
사사키는 비록 1회에 2루타와 실책으로 점수를 내주긴 했지만 이후엔 실점없이 잘 마무리하였고
2이닝 2피안타 8K 1실점 무자책을 기록하며 65구 투구 제한에 따라 마운드를 내려오며 성공적인 데뷔전을 마쳤다.
10여년전 동일본대지진으로 아픔을 겪었던 그는 이젠 최고의 투수로 성장하여 다른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선수가 되었다.
"프로야구 선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꿈과 희망을 주는 존재가 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지역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2020년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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