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보

유럽에서 가장 가난했던 스위스의 용병사업

by 프레임 2022. 3. 14.
728x90
반응형

스위스는 강력한 금융업과 제조업 쪽 로봇, 로켓, 시계, 의학 등 고도의 기술력을 지닌 강력한 나라다.

또한 세계 자원을 쥐락펴락하는 중계국으로 매년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스위스가 잘 나갔던 것은 아니었다.

원래 유럽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로 유럽 중간에 끼여 산지에 갇힌 초라하고 빈곤한 곳이었다.

크기는 경상도보다 좀 더 큰 국토에 인구는 850만명이다.

주로 캐먹던 것은 감자로 겨울이 닥치면 만들어놓은 치즈와 슬슬 썩어가는 감자로 겨우 끼니를 연명했다.

굶주림으로 하루하루가 고달팠던 이들은 어떻게든 먹고 살기 위해서 용병사업을 하게 된다.

스위스는 높은 산지에 위치해 있어서 사람들의 폐활량이 뛰어났고

인근 강대국들에 맞서 나라를 지켜내야 했기 때문에 수도 없이 싸움을 한 덕분에 실전 경험이 풍부했다.

또 16세기에 스위스 용병들은 파이크 전술을 도입하면서

당대 무적으로 군림하던 기병을 상대로 상당히 버텨낼 수 있었다.

그리하여 유럽 내에서도 스위스 용병의 강력함에 대한 평가가 좋았고 여러 나라에서 계약을 맺고

돈벌이를 위해서 목숨을 바쳐 싸우게 된다.

옛날부터 용병을 쓰는 나라들이 가장 염려하는 것은 신뢰 문제였다.

조금이라도 질만한 기세가 보이면 줄행랑을 치기 때문이다. 솔직히 돈보다 목숨이 더 소중하니까

한번 신뢰를 잃게 되면 두번 다시 용병 계약을 맺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가난한 나라 스위스의 용병들은 죽을때까지 싸우다가 전멸하곤 했다.

자신이 도망치면 고향의 가족들이 굶어죽을 것이 뻔했기 때문에 이들은 도망칠 수가 없었다.

한가지 일화로 프랑스 혁명 당시 루이 16세를 지키던 궁전에서 786명의 스위스 용병이 전부 전멸한 사건이 있었다.

프랑스 혁명 당시에 화가난 군중의 수가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궁전을 지키던 병사들은 태반이 다 도망쳐 버린 뒤였다.

군중은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와 스위스 용병에게 죽이고 싶지 않다며 살 길을 주겠으니 떠나라고 하였다.

하지만 스위스 용병 786명은 전원이 떠나는 것을 거부하고 끝까지 항전하다가 전부 몰살 당하고 말았다.

이후 이들의 시체를 뒤지다가 전사한 한 용병의 주머니에서 편지가 발견됐는데

"우리가 신용을 잃으면 후손들은 영원히 용병이 될 수 없기에 우리는 죽을 때까지 계약을 지키기로 했다" 라고 쓰여져 있었다.

가족이 굶어죽는 것보다는 자신들이 전멸하는 것을 택한 것이었다.

이후 고향에서는 그들의 전멸 소식을 알게 되었고 30년 후 이들을 기념하고자 그들의 본국에

창에 관통 당해 헐떡이며 죽어가는 사자의 조각상을 세워놓게 되었다.

심장이 창으로 관통 당해 죽어가는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전의를 잃지 않고 신의를 위해 죽어가는 사자의 모습은 스위스의 용병 그 자체였다.

이밖에도 여러 피비린내나는 전투에서 스위스의 용병들은 끝까지 항전하며 전멸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다.

세월이 오래 흐른 후, 1848년에 마침내 스위스에서는

자국의 젊은 청년들을 타국에 용병으로 수출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시켰다.

스위스의 국민들은 선조들의 비극이 반복되는 것을 더이상 용납할 수 없었기에

돈이 될만한 다른 산업을 간절하게 찾았고

알프스 산맥의 무궁무진한 약초들을 발굴하여 판매하거나

시계 부품을 시계장인에게 납품하는 등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이후에는 금융업으로 막대한 자본을 끌어모아 부국으로 성장하게 된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