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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력제와 더불어 한반도에 올인한 일본 군주

by 프레임 2021.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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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사이메이 덴노.

일본의 35대 37대 덴노이자 동아시아에 몇 안되는 여성군주임. (두번 즉위했기에 시호가 두개인데 35대 시기엔 고교쿠 덴노, 37대 시기엔 사이메이 덴노로 칭해졌다.)

 

사이메이 덴노가 37대로 즉위한 뒤 5년이 지난 660년

 

한반도의 어느 한 왕조가 절박한 도움을 급히 그녀에게 전하게 되니

 

바로 야마토 자신들에게 가장 중요한 외교 우방국이자 오랜 문화 교류로 친분을 돈독하게 맺어온 나라 백제가 멸망의 위기에 빠졌다는 것!

 

"백제가 군사를 보내달라고 요청해왔다. 그들이 우리에게까지 지원 요청을 한 것을 보면 나라가 망하여 의지할 곳도 호소할 곳도 없다는 뜻이다. 그들의 위태로운 상황을 돕고, 백제의 끊어진 왕통을 잇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거리에서 산속에서 창을 베개 삼아 싸우며 쓸개를 먹는 것과 같은 참담한 상황이니 그들의 이 절박한 뜻을 저버릴 수는 없는 일. 여러 장군에게 명하노니, 백제를 위해 출병하라. 구름처럼 번개처럼 백제 땅으로 진격해 그 원수를 쳐서 백제의 긴박한 고통을 덜어주리라."

 

사이메이 덴노는 그 즉시 백제의 구원요청에 응하여 대군을 결성하여 파병 준비를 하는 한편, 나당연합군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어요새를 건설하도록 명함.

 

무리한 대군 출병과 방어요새 건설을 무리하게 진행하던 도중 안타깝게도 그녀는 68세의 고령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661년 사망하고 말았으나, 뒤를 이은 덴지 덴노도 즉위식까지 미루면서 백제 부흥 지원을 위한 군대출병을 열심히 준비하였고 결국 기어이 실행됨. 

 

그리고 야마토 군과 백제 부흥군은 연합하여 663년 백강전투에 나섰으나 결과는 참혹한 대패 전멸크리... 사실상 이후 부흥운동은 종결되면서 백제는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버렸음.

 

일본서기의 기록을 보았을 때 당시 사이메이 덴노와 덴지 덴노가 준비한 군대 규모는 170척의 군함과 27000명의 군대였으며(이를 부여풍의 무리라고 지정하여 확실히 백제 지원을 위한 군대임을 기록함.) 일본에 머무르던 부여풍에게 관직을 주기까지 하는 등 적극 백제부흥운동을 지원하였고 백강전투에서 패한 뒤 백제 지원은 중단하였지만 백제 유이민들을 받아들여 적극 이민을 장려하고 성을 쌓고 살도록 하였다고 함.

 

물론 백제 다음은 자신 차례일지 모른다는 순망치한의 대비책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마치 백제 멸망만큼은 절대 안된다며 온 몸으로 적극 막기위해 노력하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함.

 

당시 일본에게 백제는 문화 교류 수준를 넘어 스승과도 같은 매우 매우 중요한 나라였음을 느낄 수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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